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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칼럼-[야! 한국사회]탈북자라는 존재의 증언
번호
66
작성일
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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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 사회] 탈북자라는 존재의 증언 / 김성경

등록 :2017-06-21 18:43 한겨레

부산의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탈북자>(The North Defector)는 이들의 근원적 의미와 역사성을 전면화한다. 대만, 일본, 한국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인 이 연극은 ‘탈북자’를 특정 개인이나 집단으로 단순화하는 것이 아닌 역사의 구성물이자 개념으로 확장한다. ‘탈북자’는 전쟁과 분단, (탈)제국주의와 국민국가 성립의 지난한 과정에서 ‘국가’에 절대적으로 ‘충성’하거나 아니면 ‘배신’해야만 했던 아시아의 인민들을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탈북자’는 폭력적 국가를 ‘배신’함으로써 ‘자유’롭고자 했지만 오히려 국가에 더욱 포박되었으며, 생존 경쟁이라는 틈바구니에서 존재적 고독과 외로움에 고통받는 존재이다. ‘탈북자’는 냉전과 열전, 그리고 뒤이은 분단과 적대의 파고 속에서 국가 밖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했던 아시아 인민 모두의 역사적 고통을 상징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지금껏 ‘탈북자’라는 존재의 역사적 의미와 복잡성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탈북자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없이 이들을 사회 통합의 대상으로 단순화하여 수많은 정책과 해결책 등을 쏟아내온 것이다. 게다가 문제 해결에만 골몰해온 한국 사회는 최근 등장한 탈북자 개개인의 예상치 못한 ‘얼굴’ 앞에서 사실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잃어버린 고향으로 상징되는 이들이 우리의 상상을 벗어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모습이 아닌 악다구니 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적대적 감정이 바로 그 예가 된다.

 

겉으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정답을 내놓으면서도, 사실 그들이 내뱉는 한국 사회에 대한 강한 질책과 비난에 우리 모두는 복잡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고, 급기야 태극기 집회의 선두에 선 탈북자들의 날선 표현 앞에서 우리는 이들을 극우주의자로 악마화하기도 했다. 또한 영민하게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탈북자들의 모습이 어색한 몇몇은 복지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순수’하고 ‘어리숙하며’, 이등 시민의 지위조차도 ‘감사히’ 받아들이는 탈북자를 기대해온 한국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에서 기인한 현상이다.

 

탈북자는 한국 사회의 고통의 역사와 분단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모국을 ‘탈출’했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 받아들여진 이들에게 허용된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부정해야만 하는 ‘북한’은 역사적으로 혹은 남한 및 강대국과의 관계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와 해석이 가능한지, 그리고 분단과 국가라는 울타리 안팎에서 개개인에게 주어진 권리와 자유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바로 탈북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 후보를 반대하기 위해 탈북자 3천명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등으로 집단 망명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여전히 제국주의와 반공주의의 자장 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상상하는 탈북자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모국을 ‘배신’하여 얻은 이들의 ‘자유’가 분단 체제에서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가늠하게 한다. 이렇듯 탈북자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냉전과 분단 문제의 현재성을 또렷이 증언하고 있다. 탈북자는 한국 사회가 애써 잊으려 했던 냉전과 분단이 사실 얼마나 촘촘하게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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